장 보드리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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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 보드리야르는 프랑스의 사회학자, 문화 비평가, 철학자, 사진가로, 1929년 랭스에서 태어나 2007년 사망했다. 그는 기호학, 마르크스주의, 소비사회 사회학을 결합하여 현대 사회를 탐구했으며, 특히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 개념을 통해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을 분석했다. 주요 저서로는 《사물 체계》, 《소비사회》,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 등이 있으며, 앨런 소칼 등으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의 사상은 포스트모더니즘, 미디어 이론, 예술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영화 《매트릭스》에도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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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보드리야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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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장 보드리야르 |
원어 이름 | Jean Baudrillard |
출생일 | 1929년 7월 27일 |
출생지 | 프랑스 랭스 (마른 현) |
사망일 | 2007년 3월 6일 |
사망지 | 프랑스 파리 |
국적 | 프랑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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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적 배경 | |
연구 분야 | 서양 철학 |
시대 | 20세기 철학/21세기 철학 |
학파 | 대륙 철학 마르크스주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포스트 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
주요 관심사 | '파타피직스 기호학 사회 철학 |
주요 사상 | 시뮬라크르 하이퍼리얼리티 |
학력 | 파리 대학교 |
소속 기관 | 파리 X 낭테르 대학교 유럽 대학원 |
박사 논문 제목 | 사물의 체계 (Le système des objets) |
박사 논문 연도 | 1968년 |
박사 지도교수 | 앙리 르페브르 |
영향 | |
영향을 준 인물 |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니체 지그문트 프로이트 노버트 위너 마르셀 모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앙리 르페브르 롤랑 바르트 조르주 바타유 기 드보르 필립 K. 딕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마셜 매클루언 미셸 푸코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 기타 다수 |
영향을 받은 인물 | 슬라보이 지제크 워쇼스키 자매 빅토르 펠레빈 기타 다수 |
참고 자료 | |
공식 웹사이트 |
2. 생애
장 보드리야르는 1929년 7월 27일 프랑스 북동부 랭스에서 태어났다.[70][8] 그의 조부모는 농민이었고, 아버지는 하급 관리 또는 헌병이었다.[70][8] 그는 가족 중 처음으로 대학 교육을 받은 인물이었다. 소르본 대학교에서 독일어와 독일 문학을 전공한 후,[9] 1956년부터 고등학교에서 독일어를 가르쳤다.[70] 초기에는 독일 문학 연구와 번역에 집중했으며, 페터 바이스, 베르톨트 브레히트, 카를 마르크스 등의 작품을 프랑스어로 옮겼다.[71][8] 이 시기 앙리 르페브르와 롤랑 바르트의 영향을 받아 사회학으로 관심을 넓혔다.[71]
1966년 파리 낭테르 대학에서 르페브르의 조교가 되었고, 같은 해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교수 활동을 시작했다.[71] 그의 박사 논문을 바탕으로 출간된 ''사물의 체계''(1968)는 기호학과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을 접목하여 소비사회를 분석한 중요 저작으로 평가받는다.[71] 그는 낭테르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1968년 5월 혁명을 경험하기도 했다.[10] 1970년대에는 마르크스주의와 거리를 두면서도 자본주의 비판을 이어갔으며, 독일 프랑크푸르트학파, 특히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와 유사한 경향을 보였다.[71] 1981년에는 그의 가장 널리 알려진 저작 중 하나인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을 발표했다.[71]
1986년 낭테르 대학 교수직을 사임하고,[8] 이후 저술과 강연, 사진 작업 등에 몰두했다. 1994년부터는 스위스 사스페의 유럽 대학원(EGS) 교수로 활동하며 2007년 타계할 때까지 재직했다.[72][13] 그는 사진가로서도 활동하며 여러 차례 전시회를 열었고, 사진 평론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1990년대 이후에는 걸프 전쟁, 9.11 테러, 세계화 등 동시대적 사건들을 분석하며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와 현대 사회의 문제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그의 사상은 시뮬레이션니즘과 같은 현대 미술[66] 및 영화 매트릭스 등 대중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한편 앨런 소칼 등으로부터 과학 용어 오용에 대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소칼 사건 참조).
개인적으로 보드리야르는 바로크 음악, 특히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와 록 음악(벨벳 언더그라운드)을 즐겼으며, 컴퓨터 대신 타자기로 글 쓰는 것을 선호했다.[15][7][16] 그는 두 번 결혼하여 첫 부인 루실과의 사이에 두 자녀를 두었고, 1994년 마린 뒤푸아와 재혼했다.[15][17][18][19] 2005년 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가 2007년 3월 6일 파리 자택에서 향년 77세로 사망했다.[17][15]
2. 1. 초기 생애와 교육
장 보드리야르는 1929년 7월 27일 프랑스 북동부 랭스에서 태어났다.[70][8] 그의 조부모는 농민이었고,[70] 아버지는 헌병이었다.[8] 그는 가족 중 처음으로 대학 교육을 받았다.랭스의 리세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으며, 이 시기 철학 교사 에마뉘엘 페이예를 통해 '파타피직스'를 접했는데, 이는 그의 후기 사상 형성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8]
1948년 파리 소르본 대학교에 입학하여 독일어와 문학을 전공했다.[9] 대학 졸업 후 1956년부터 고등학교에서 독일어를 가르치기 시작했으며,[70] 특히 1960년부터 1966년까지 파리와 지방의 여러 리세에서 활동했다.[8]
초기에는 독일 연구에 집중하여 1962년부터 1963년 사이 독일 문학 관련 글을 발표했고, 페터 바이스, 베르톨트 브레히트, 카를 마르크스, 빌헬름 에밀 뮐만 등의 저작을 프랑스어로 번역했다.[71] 이 시기에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와 구조주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를 접하고 그들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71]
1966년 파리 낭테르 대학에서 르페브르의 조교가 되어 언어학, 철학, 사회학 등을 공부하며 박사 과정을 밟았다.[71] 같은 해 박사 학위를 취득했는데, 그의 박사 논문은 『사물의 체계』였으며, 롤랑 바르트, 피에르 부르디외, 앙리 르페브르가 심사했다. 그해 10월부터는 낭테르 대학에서 사회학 강의를 시작했다.[71]
2. 2. 교수 경력과 초기 저술 활동 (1956-1986)
1956년 독일어 고등학교 교사로 경력을 시작했으며, 1960년대 초반에는 프랑스 출판사 쇠이유에서 편집자로 일했다.[70][71] 초기에는 독일 연구에 집중하여 1962년부터 1963년까지 독일 문학에 대한 글을 발표했고, Peter Weiss|페터 바이스deu, Bertolt Brecht|베르톨트 브레히트deu, Karl Marx|카를 마르크스deu, Friedrich Engels|프리드리히 엥겔스deu, Wilhelm Emil Mühlmann|빌헬름 에밀 뮐만deu 등의 작품을 프랑스어로 번역했다.[71][8] 1962년에는 펠릭스 가타리와 함께 프랑스 중국인민협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이 시기 앙리 르페브르를 만나 영향을 받았으며, 구조주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에 대한 연구도 시작했다.[71]독일어를 가르치던 중 사회학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1966년 파리 파리 낭테르 대학에서 르페브르의 조교가 되어 언어, 철학, 사회학 등을 공부했다.[71] 같은 해 10월부터 이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71] 1968년에는 Henri Lefebvre|앙리 르페브르fra, Roland Barthes|롤랑 바르트fra, Pierre Bourdieu|피에르 부르디외fra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박사 논문 ''Le Système des Objets'' (''사물 체계'')를 완성하고 출판했다.[10] 이 책은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기호학을 마르크스주의 가치 이론에 적용하여, 상품이 사용가치뿐 아니라 기호로서 기능하는 방식을 설명하며 주목받았다. 그가 재직한 낭테르 대학은 1968년 5월 혁명의 주요 무대가 되기도 했다.[10] 이 기간 동안 보드리야르는 철학자 험프리 드 바텐버지와 긴밀히 협력했는데, 그는 보드리야르를 "비전가"라고 묘사했다.[11]
1970년 낭테르 대학 전임강사가 되었고, 이후 조교수(Maître Assistant)와 부교수(Maître de Conférences)를 거쳐 정교수로 승진했다.[71][11] 이 시기 그는 마르크스의 혁명론과는 거리를 두었지만, 마르크스의 상품 생산 비판에 기반한 자본주의 비판은 계속 이어나갔다. 그의 학문적 경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학파, 특히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와 유사한 면을 보였다.[71] 기호학, 마르크스 정치경제학, 소비사회 사회학을 결합하여 현대 사회를 탐구하는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71]
1970년대에는 해외 활동도 시작하여 1970년 미국 애스펀을, 1973년 일본 교토를 처음 방문했다.[8] 1977년에는 『유혹론 서설—푸코를 잊자』를 발표하여 미셸 푸코와의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1981년에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한국어판 제목: 시뮬라시옹)을 발표했다.[71] 같은 해 일본에서 첫 카메라를 선물 받고 사진 작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8] 1980년대에 그의 저서는 점차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했으며, 특히 예술계에 영향을 미쳐 뉴욕의 시뮬레이션니즘 작가들에게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다.[12][66]
1986년, 파리 9대학 도핀의 IRIS(Institut de Recherche et d'Information Socio-Économique)로 자리를 옮기면서 낭테르 대학교 교수직을 사임했다.[8] 이 시기 그는 점차 기존의 사회학 연구 방법론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다.[12]
2. 3. 후기 경력 (1986-2007)
1986년 낭테르 대학교 교수직을 사임하였다.[71] 이후 1994년 유럽 대학원(EGS)이 설립되자 교수로 참여하여, 2007년 3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재직하였다.[72]1990년대에는 사진가 및 사진 평론가로도 활동 영역을 넓혔으며, 사진 평론집 『소멸의 기법』 등을 출간하였다. 1992년에는 저서 『The Illusion of the End』(한국어 번역 미발간)를 통해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으로 대표되는 당시의 자유주의적 낙관론을 비판하였다.
2001년 9.11 테러 이전부터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주목했던 그는, 테러 이후 걸프 전쟁,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 이슬람교의 테러, 세계화와 아메리카나이제이션 등 당대 현안을 소재로 삼아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가 내포한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그의 철학은 예술 분야에도 영향을 미쳐, 1980년대 뉴욕에서 부상한 시뮬레이션니즘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66] 또한 영화 매트릭스의 세계관 구축에 큰 영향을 주었다. 와쇼스키 자매 감독은 주연 배우 키아누 리브스를 비롯한 제작진에게 그의 저서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을 읽도록 하였으며, 영화 속에서도 이 책이 등장한다. 와쇼스키 자매는 속편 제작 당시 보드리야르에게 자문을 구했으나 거절당한 일화도 있다.
한편, 앨런 소칼 등으로부터 수학 및 과학 용어를 부적절하게 사용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소칼 사건 참조).
2007년 3월 6일, 파리 자택에서 향년 77세로 세상을 떠났다.
3. 사상과 이론
장 보드리야르의 사상적 여정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1968년부터 1971년까지는 포스트마르크스주의적 경향을 보였고, 1972년부터 1977년까지는 사회언어학에 집중했으며, 그 이후에는 기술과 관련된 예언적인 성격의 논의를 전개했다.[72]
그는 프랑스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 구조주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 독일 철학자 카를 마르크스 등 여러 학자에게 영향을 받았다. 학문적으로는 주로 포스트모더니즘 계열로 분류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특히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으며, 보드리야르가 뒤르켐의 지적 전통을 계승했다는 평가도 있다.[73] 미디어 이론 측면에서는 캐나다 이론가 마셜 매클루언의 영향이 두드러진다.
보드리야르는 기호학, 특히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이론에서 출발하여 현대 사회를 분석했다. 그는 기호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기호들 간의 관계 속에서 의미가 생산되며,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기호들이 현실을 대체하고 지배하는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의 단계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현실은 점차 소멸하고 초현실적인 상태가 도래한다고 보았다.
또한 그는 역사성의 종말을 선언하며, 냉전 종식 이후 진보나 유토피아에 대한 거대 담론이 힘을 잃고 역사가 더 이상 선형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후기 저작에서는 권력의 작동 방식 변화에 주목하며, 특히 현대 사회의 헤게모니적 권력과 그 냉소주의를 비판했다.
보드리야르의 이론은 철학, 사회학, 문화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미국의 현대 예술가들에게 큰 영감을 준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의 저작은 난해하고 때로는 과학적 용어를 부적절하게 사용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앨런 소칼 등은 그의 과학 용어 사용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으며, 이는 소칼 사건으로 알려진 논쟁을 촉발하기도 했다.[74]
3. 1. 주요 개념
보드리야르의 저술은 질 들뢰즈, 장-프랑수아 리오타르,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자크 라캉 등과 함께 기호학에 관심을 공유한 프랑스 사상가 세대의 일부로 등장했으며, 그는 종종 포스트구조주의 철학 사조의 일부로 여겨진다.[20] 제임스 M. 러셀은 "많은 포스트구조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주장은 의미화와 의미가 특정 단어 또는 '기호'가 어떻게 상호 연관되는지에 따라서만 이해될 수 있다는 개념에 일관되게 의존한다"고 언급했다.[21] 보드리야르는 많은 포스트구조주의자들처럼 의미가 함께 작용하는 기호의 ''체계''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구조주의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뒤를 이어 보드리야르는 의미(''가치'')가 ''차이''를 통해, 즉 무엇이 아닌가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따라서 "개"는 "고양이"가 아니고, "염소"가 아니고, "나무"가 아니기 때문에 "개"를 의미한다). 사실 그는 의미를 거의 자기참조적이라고 보았다. 사물, 사물의 이미지, 단어, 기호는 의미의 그물에 위치한다. 하나의 사물의 의미는 다른 사물의 체계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사물의 권위는 다른 사물의 평범함과 관련이 있다.[22]이를 바탕으로 보드리야르는 이러한 종류의 자기참조성을 기반으로 인간 사회에 대해 광범위하게 이론화했다. 그의 글은 사회가 항상 의미나 세계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를 추구하지만, 그것은 항상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포스트구조주의 (예: 미셸 푸코)와 달리, 지식의 형성은 권력 관계의 결과로만 나타나는 반면, 보드리야르는 지나치고 무익한 전체 지식에 대한 탐구가 거의 불가피하게 일종의 망상으로 이어진다는 이론을 발전시켰다. 보드리야르의 견해에 따르면, (인간) 주체는 (비인간) 객체를 이해하려고 시도할 수 있지만, 객체는 그것이 의미하는 것에 따라서만 이해될 수 있기 때문에(그리고 의미화 과정은 즉시 구별되는 다른 기호의 그물을 포함하기 때문에) 이것은 결코 원하는 결과를 산출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체는 대상에 의해 ''유혹''(seducerela)된다. 따라서 그는 궁극적으로 인간 삶의 세부 사항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하며,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도록 유혹될 때 그들은 현실의 "모의된" 버전, 또는 그의 신조어 중 하나를 사용하여 "초현실" 상태에 끌리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세계가 비현실적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현실을 하나의 일관된 그림으로 더 빠르고 포괄적으로 통합하기 시작할수록, 그것은 더 불안정하고 불안정해 보이고 사회는 더 두려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23] 이러한 의미에서 현실은 "사라진다".[24]
러셀은 보드리야르가 "우리 현재의 '세계적' 사회에서 기술적 의사소통은 과도한 의미의 확산을 만들어냈다. 이 때문에 의미의 자기참조성은 '세계 마을'이 아니라 의미가 사라진 세계를 촉구했다"고 주장한다고 설명한다.[21] 따라서 보드리야르는 20세기 후반 "세계적" 사회에서 기호와 의미의 과잉이 역설적으로 현실의 소멸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이 세계에서는 더 이상 자유주의적 유토피아나 마르크스주의적 유토피아를 믿지 않는다. 그는 마셜 매클루언의 용어를 빌려, 우리가 세계 마을이 아닌, 사소한 사건에도 쉽게 경직되는 세계에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세계적" 세계는 기호와 상품 교환의 차원에서 작동하므로, 예를 들어 테러와 같은 ''상징적''[25] 행위에 대해 점점 더 눈이 멀게 된다. 보드리야르의 작품에서 상징 영역(인류학 연구를 통해 마르셀 모스와 조르주 바타이유의 관점을 발전시킨 영역)은 기호 및 의미화 영역과 매우 다르다고 보았다. 기호는 상품처럼 교환될 수 있다. 반면 상징은 매우 다르게 작동한다. 선물처럼, 때로는 포틀래치처럼 폭력적인 방식으로 교환된다. 보드리야르는 특히 후기 저작에서 "세계적" 사회에는 이러한 "상징적" 요소가 부재하며, 따라서 살만 루슈디 사건[26]이나 미국과 그 군사 및 경제 기반에 대한 9·11 테러처럼 상징적으로(군사적이 아니더라도) 무방비 상태라고 보았다.
===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 ===
보드리야르는 1980년대에 연구 범위를 경제 이론에서 매개와 대중매체로 확장했다. 소쉬르의 기호학과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의 영향을 받은) 상징적 교환 논리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면서도, 보드리야르는 마셜 맥루한의 작업에 주목하여 사회 관계의 본질이 사회가 사용하는 의사소통 형태에 의해 결정되는 방식에 대한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그렇게 하면서 보드리야르는 소쉬르와 롤랑 바르트의 형식 기호학을 넘어 역사적으로 이해된 구조 기호학의 함의를 고려하게 되었다. 코르넬리예 크바스는 "보드리야르는 언어 조직의 여러 형태의 동등성이라는 구조주의적 원칙, 참-거짓, 실재-비실재, 중심-주변과 같은 대립을 포함하는 이항 원칙을 거부한다. 그는 현실의 (모방적인) 복제의 가능성을 부정한다. 언어를 통해 매개되는 현실은 기호의 게임이 된다. 그의 이론 체계에서 실재와 허구, 사본과 원본 사이의 모든 구분은 사라진다"고 설명한다.
보드리야르는 시뮬라크르의 현재 단계가 바로 시뮬라시옹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것은 지시대상 없는 기호로 구성된 초현실이다. 보드리야르는 이것이 역사적 진행 과정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사람이나 사물이 존재하지 않는 실제 지시대상(예: 왕족, 귀족, 신성 등)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는 위조의 형태로 지배적인 시뮬라크르가 존재했다. 산업혁명과 함께 지배적인 시뮬라크르는 끝없는 생산 라인에서 전파될 수 있는 제품이 된다. 현재는 스스로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모델 자체가 지배적인 시뮬라크르이다.
=== 역사성의 종말 ===
1980년대와 1990년대 보드리야르의 주요 주제 중 하나는 역사성이었으며, 더 구체적으로는 현대 사회가 정치적 선택에서 진보와 근대성의 개념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정치 이론가 프랜시스 후쿠야마처럼 세계화 확산으로 역사가 종말을 맞았거나 "사라졌다"고 주장했지만, 후쿠야마와 달리, 보드리야르는 이 종말이 역사적 진보의 정점은 아니라고 보았다.
: 이 세계 질서의 목표는 [...] 어떤 의미에서 역사의 종말이며, 후쿠야마가 말하는 민주적 성취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방적 테러, 즉 가능한 모든 사건을 종식시키는 반테러를 바탕으로 한다.
: — 보드리야르, ''악의 지능 또는 명료성 계약''. 뉴욕: 버그 출판사, 2005년, 크리스 터너 번역[30]
보드리야르에게 있어 냉전의 종식은 이념적 승리를 의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정치 좌파와 우파 모두가 공유했던 유토피아적 비전의 사라짐을 알리는 신호였다. 마르크스주의적 세계 공산주의나 자유주의적 세계 시민 사회 비전을 비판하며, 보드리야르는 그가 추구했던 목표들이 항상 환상이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종말의 환상''에서 그는 종말 개념 자체가 망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 역사의 종말은, 아아, 역사의 쓰레기통의 종말이기도 하다. 더 이상 낡은 이데올로기, 낡은 정권, 낡은 가치를 버릴 쓰레기통이 없다. 실제로 역사의 쓰레기통을 발명한 마르크스주의를 어디에 버릴 것인가? (하지만 그것을 발명한 사람들이 그 안에 빠졌다는 점에서 어떤 정의가 있다.) 결론: 더 이상 역사의 쓰레기통이 없다면, 그것은 역사 그 자체가 쓰레기통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의 쓰레기통이 되었고, 마치 지구 그 자체가 자신의 쓰레기통이 되는 것과 같다.[31]
빠르게 변화하는 전자 통신과 세계적 정보 네트워크의 지배를 받는 사회 내에서 이러한 허울의 붕괴는 항상 불가피할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물리학자 앨런 소칼에게 비판받기도 한[74] 준과학적 용어를 사용하여 보드리야르는 사회가 움직이는 속도가 역사의 선형성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다고 썼다. "우리는 입자 가속기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한 번에 모든 것들의 참조 궤도를 산산이 부쉈다."[31]
러셀은 이러한 역사 접근 방식이 장-프랑수아 리오타르의 포스트모더니즘 철학과 유사하다고 지적한다.[21] 리오타르는 20세기 후반에는 더 이상 "거대 담론"이 설 자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다가올 공산주의의 승리는 그러한 거대 담론 중 하나이다.) 그러나 보드리야르는 리오타르를 넘어서, 역사의 붕괴를 단순히 한탄하는 대신, 개념의 타당성이 약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긍정적 진보 개념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분석하고자 했다. 보드리야르는 모든 갈등이 해소되는 보편적 역사 종점에 대한 믿음은 사라졌지만, 보편성 개념은 여전히 세계 정치에서 특정 행동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사용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더 이상 아무도 믿지 않는 보편적 가치는 정당화하기 어려운 선택을 수사적으로 포장하는 데 사용된다. 그는 목표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도 수단은 남아 현실(그의 표현으로는 비현실)을 은폐하는 데 사용된다고 썼다. "계몽주의에서 보편화는 무한한 성장과 전진으로 여겨졌지만, 오늘날 보편화는 앞으로 나아가는 '탈출'로 나타난다."[32] 여기에는 ''종말의 환상''에서 설명한 "탈출 속도" 개념이 포함되며, 이는 다시 포스트모더니즘적 "탈출 속도의 오류"로 이어진다. 즉, 포스트모던적 사유와 비판적 관점은 본질적으로 포괄적인 "자기 참조적" 담론의 영역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 권력 비판 ===
2005년 보드리야르는 세 편의 짧은 글과 잡지 인터뷰에서 권력 자체를 비판했는데, 이는 2007년 그의 사후 《권력의 고뇌》(The Agony of Power)로 묶여 출간되었다.[41] 첫 글 '지배에서 헤게모니로'는 역사적·전통적 권력 관계인 '지배'와 국가·기업이 행사하는 현대적·정교한 권력 관계인 '헤게모니'라는 두 가지 권력 양식을 대조한다. 보드리야르는 현대 기업이 공공연히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을 드러내는 '냉소주의'를 비판했다. 예를 들어 프랑스 텔레비전
3. 2. 사상적 영향
그의 사상적 행적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1968년부터 1971년까지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경향, 둘째는 1972년부터 1977년까지의 사회언어학 경향, 그리고 그 이후의 기술 관련 예언적 경향이다.[72]보드리야르에게 영향을 준 학자들로는 프랑스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 구조주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 독일 철학자 카를 마르크스 등이 있다. 학문적으로는 흔히 포스트모더니즘 계열로 분류되지만, 포스트모더니즘과는 거리가 있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특히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았으며, 보드리야르가 뒤르켐의 지적 전통을 충실히 따랐다는 평가도 있다.[73] 미디어 이론과 관련해서는 캐나다의 이론가 마셜 매클루언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1980년대를 거치며 보드리야르는 자신의 연구 영역을 경제 이론에서 매개와 대중매체로 확장했다. 그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기호학과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의 영향을 받은 상징적 교환의 논리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면서도, 마셜 매클루언의 작업에 주목했다. 이를 통해 사회가 사용하는 의사소통 형태가 사회 관계의 본질을 결정하는 방식에 대한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이 과정에서 보드리야르는 소쉬르와 롤랑 바르트의 형식 기호학을 넘어 역사적으로 이해된 구조 기호학의 함의를 고려하게 되었다.
보드리야르의 이론은 여러 분야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미국의 현대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받는다.
한편, 그는 앨런 소칼 등으로부터 수학이나 과학 용어를 부적절하게 사용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74] (소칼 사건 참고.)
3. 3. 비판
앨런 소칼 등은 보드리야르가 수학 및 과학 용어를 부적절하게 사용한다고 비판했다.[74] (소칼 사건 참고.)장 보드리야르의 저작에 대한 비판은 여러 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다. 장-프랑수아 리오타르는 1974년 저서 《리비도 경제학》(Économie Libidinalefra)에서 보드리야르의 작업을 비판했다. 로트링거(Lotringer)에 따르면, 질 들뢰즈는 보드리야르가 푸코의 저작에 대한 견해를 발표한 후 파리에서 보드리야르를 "직업의 수치"로 여긴다는 말을 퍼뜨렸다고 한다.[42][43]
손택은 보스니아 전쟁에 대한 보드리야르의 논평에 대해 그를 "무지하고 냉소적인", "정치적 바보"라고 묘사했다.[44] 앞서 보드리야르는 포위된 사라예보에서 손택이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출한 것을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그는 손택의 행동이 서구 지식인들의 위선과 현실 감각 상실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주장했다.[34][35]
제임스 M. 러셀(James M. Russell)은 2015년에 보드리야르의 "가장 심한 비평가들은 그를 현실 부정적 비합리주의의 전파자로 비난한다"고 요약했다.[21]
보드리야르의 편집자 중 한 명이자 비판 이론 교수인 마크 포스터는 보드리야르의 저술에 대해 다음과 같은 비판적 견해를 밝혔다.
> 1980년대 중반까지 보드리야르의 저술은 여러 가지 비판에 개방적이다. 그는 코드와 같은 핵심 용어를 정의하지 못하며, 그의 글쓰기 스타일은 과장되고 단정적이며, 적절할 때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분석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는 자신의 통찰력을 전체화하고, 자신의 주장을 한정하거나 경계 짓기를 거부한다. 그는 특정 경험, 텔레비전 이미지에 대해 마치 사회의 다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쓰며, 그 제한된 기반에서 세상에 대한 암울한 견해를 추론한다. 그는 새로운 미디어가 제공하는 많은 이점과 같은 모순되는 증거를 무시한다.
하지만 포스터는 여전히 보드리야르의 현대적 관련성을 강조하며, 그의 가장 극단적인 비평가들의 주장을 반박하려고 시도했다. 포스터는 보드리야르가 일상적인 행동에서의 이성 작용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를 이해하는 데 있어 전통적인 이성 중심 사고방식의 한계를 지적한다고 설명했다.
> 보드리야르는 이성이 어떤 행위에서 여전히 작용한다는 사소한 문제에 대해 논쟁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다음 블록에 도착하려면 뉴턴 우주(상식)를 가정하고, 행동 계획(X미터만큼 직진으로 걷기)을 세우고, 행동을 수행하고, 마침내 해당 지점에 도착함으로써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의심스러운 것은 이러한 종류의 사고방식이 일반적으로 현재에 대한 역사적으로 정보에 입각한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미디어를 통한 초현실의 동시적 확산과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정치가 주요 서사로서 붕괴됨으로써 합리적 주체는 진리에 대한 특권적인 접근을 박탈당한다. 중요한 의미에서 개인은 더 이상 시민이 아니며, 시민권을 극대화하려고 열망하는 것도 아니고, 공산주의의 시작을 예상하는 프롤레타리아도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소비자이며, 따라서 코드에 의해 정의된 대상의 먹잇감이다.
크리스토퍼 노리스는 《비판적이지 않은 이론: 포스트모더니즘, 지식인, 그리고 걸프 전쟁》(Uncritical Theory: Postmodernism, Intellectuals and the Gulf Wareng)[37]에서 보드리야르의 미디어 이론과 "실재"에 대한 입장을 비판적으로 분석했다.[21]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 이론가 더글러스 켈러너는 《장 보드리야르: 마르크스주의에서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그 너머》(Jean Baudrillard: From Marxism to Postmodernism and Beyondeng)[45]에서 보드리야르가 기술 결정론과 기호학적 관념론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켈러너는 보드리야르의 1970년대 이후 작업이 진실보다는 허구에 가깝다고 평가하며, 그의 저서 《유혹에 대하여》(De la séductionfra)를 "페미니즘에 대한 모욕"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45] 보드리야르 자신은 켈러너의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을 환원적이라고 평가했다.[46]
1991년, 《공상 과학 연구》(Science Fiction Studieseng)에 기고한 비비안 솝착(Vivian Sobchack)은 보드리야르에게 "도덕적 시선"이 부족하며 "정말 위험하다"고 주장했다.[47] 보드리야르가 글에서 다루었던 작가 J. G. 발라드는 보드리야르가 "음울한 전문 용어에 갇혀 있다"고 말했다.[47]
사라 아메드는 1996년 보드리야르의 《유혹에 대하여》가 여성을 남성적 시선 아래 유통되는 기호와 상품으로 취급하고 이를 찬양한다고 비판했다.[48]
미술 평론가 에이드리언 설(Adrian Searle)은 1998년 보드리야르의 사진을 "수줍고, 애처로우며, 이상하게 잊을 수 없는", "무시된 순간들의 영화 스틸 사진"과 같다고 묘사했다.
마크 피셔는 보드리야르를 "사라진 현실을 우울하게 관찰하는 자"로 묘사하며 그가 "확실히 우울했다"고 주장했다.[49] 마크 포스터 역시 "1960년대의 정치가 쇠퇴함에 따라 보드리야르의 급진주의도 사라졌다. 그는 확고한 좌파적 입장에서 점차 암울한 운명론으로 이동했다"고 평가했는데, 이는 펠릭스 가타리의 견해와도 일치한다.[43] 반면 리처드 G. 스미스(Richard G. Smith), 데이비드 B. 클라크(David B. Clarke), 마커스 A. 도엘(Marcus A. Doel) 등은 보드리야르를 "극단적인 낙관주의자"로 보기도 한다.[50] 비판 이론가 맥켄지 워크(McKenzie Wark)는 게르트 로빙크(Geert Lovink)와의 대화에서 보드리야르에 대해 "그가 쓴 모든 것은 급진적인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항상 가장 행복한 형태로 표현되었다"고 말했다.[51] 보드리야르 자신은 "우리는 비현실성, 책임 부재, 허무주의, 절망에 대한 비난과 싸워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52] 그의 저서 《쿨 메모리즈: 1980~1985》(Cool Memories: 1980–1985eng)에는 "나는 내가 […] 깊이 관능적이고 멜랑콜리하며 […] 아멘이라고 자책한다"는 구절이 있다.[53]
데이비드 메이시(David Macey)는 보드리야르가 푸코에 대해 보인 태도에서 "엄청난 오만함"을 지적했다.[42] 손택 역시 보드리야르를 '거만하다'고 평가했다. 러셀은 "보드리야르의 글쓰기와 그의 타협하지 않는, 심지어 오만한 태도는 격렬한 비판을 불러일으켰는데, 이는 현대 사회 학문에서 자크 라캉이 받은 비판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고 썼다.[21]
4. 한국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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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주요 저서
- 1968. 사물의 체계 (''Le Système des objets프랑스어'') (영어: ''The System of Objects'', 1996)
- 1970. 소비사회 (''La Société de consommation프랑스어'') (영어: ''The Consumer Society: Myths and Structures'', 1998)
- 1972.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 (''Pour une critique de l'économie politique du signe프랑스어'') (영어: ''For a Critique of the Political Economy of the Sign'', 1981)
- 1973. 생산의 거울 (''Le Miroir de la production프랑스어'') (영어: ''The Mirror of Production'', 1975)
- 1976. 상징적 교환과 죽음 (''L'Échange symbolique et la mort프랑스어'') (영어: ''Symbolic Exchange and Death'', 1993)
- 1977. 푸코를 잊어라 (''Oublier Foucault프랑스어'') (영어: ''Forget Foucault'', 1987)
- 1978. 침묵하는 다수의 그림자 속에서 (''À l'ombre des majorités silencieuses프랑스어'') (영어: ''In the Shadow of the Silent Majorities'', 1983)
- 1979. 유혹 (''De la séduction프랑스어'') (영어: ''Seduction'', 1990)
- 1981.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 (''Simulacres et Simulation프랑스어'') (영어: ''Simulacra and Simulation'', 1994)
- 1983. 치명적인 전략들 (''Les Stratégies fatales프랑스어'') (영어: ''Fatal Strategies'', 1990)
- 1983. 시뮬레이션 (''Simulations'') (영어 초판)
- 1985. 신성한 좌파: 1977-1984년 연대기 (''La Gauche divine: chronique des années 1977–1984프랑스어'') (영어: ''The Divine Left: A Chronicle of the Years 1977–1984'', 1985)
- 1986. 아메리카 (''Amérique프랑스어'') (영어: ''America'', 1988)
- 1987. 쿨 메모리 1980-1985 (''Cool Memories 1980–1985프랑스어'') (영어: ''Cool Memories 1980–1985'', 1989)
- 1987. 의사소통의 황홀경 (''L'Extase de la communication프랑스어'') (영어: ''The Ecstasy of Communication'', 1988)
- 1990. 악의 투명성 (''La Transparence du Mal프랑스어'') (영어: ''The Transparency of Evil'', 1993)
- 1990. 쿨 메모리 II 1987-1990 (''Cool Memories II 1987–1990프랑스어'') (영어: ''Cool Memories II 1987–1990'', 1996)
- 1991. 걸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La Guerre du Golfe n'a pas eu lieu프랑스어'') (영어: ''The Gulf War Did Not Take Place'', 1995)
- 1992. 종말의 환상 혹은 사건의 파업 (''L'Illusion de la fin ou la grève des événements프랑스어'') (영어: ''The Illusion of the End'', 1994)
- 1995. 완전범죄 (''Le Crime parfait프랑스어'') (영어: ''The Perfect Crime'', 1996)
- 1995. 단편들: 쿨 메모리 III 1990-1995 (''Fragments: Cool Memories III 1990–1995프랑스어'') (영어: ''Fragments: Cool Memories III 1990–1995'', 1997)
- 1997. 패러옥시즘: 필립 쁘띠와의 인터뷰 (''Paroxysm: Interviews with Philippe Petit프랑스어'') (영어: ''Paroxysm: Interviews with Philippe Petit'', 1998)
- 1997. 스크린 아웃 (''Écran total프랑스어'') (영어: ''Screened Out'', 2002)
- 1999. 불가능한 교환 (''L'Échange impossible프랑스어'') (영어: ''Impossible Exchange'', 2001)
- 2000. 암호 (''Mots de passe프랑스어'') (영어: ''Passwords'',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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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 예술의 음모 (''Le Complot de l'art프랑스어'') (영어: ''The Conspiracy of Art'', 2005)
- 2001. 단편들 (프랑수아 리보네와의 인터뷰) (''D'un fragment l'autre프랑스어'') (영어: ''Fragments (Interviews with François L'Yvonnet)'', 2003)
- 2001. 텔레모르포시스 (''Télémorphose프랑스어'') (영어: ''Telemorphosis'', 2011)
- 2002. 테러의 정신과 쌍둥이 빌딩을 위한 레퀴엠 (''L'Esprit du terrorisme프랑스어'') (영어: ''The Spirit of Terrorism and Requiem for the Twin Towers'', 2002)
- 2004. 악의 지능 또는 명료성 협정 (''Le Pacte de lucidité ou l'intelligence du Mal프랑스어'') (영어: ''The Intelligence of Evil or the Lucidity Pact'', 2005)
- 2005. 쿨 메모리 V 2000-2004 (''Cool Memories V 2000–2004프랑스어'') (영어: ''Cool Memories V 2000–2004'', 2006)
- 2005. 대화로부터의 추방 (엔리케 발리엔테 노알레스와 함께) (''Exiles from Dialogue프랑스어'' with Enrique Valiente Noailles) (영어: ''Exiles from Dialogue'', 2007)
- 2006. 유토피아 연기: 유토피를 위한 글쓰기 (1967–1978) (''Utopia Deferred: Writings for Utopie (1967–1978)'') (영어 초판)
- 2007. 왜 모든 것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는가? (''Pourquoi tout n'a-t-il pas déjà disparu?프랑스어'') (영어: ''Why Hasn't Everything Already Disappeared?'', 2009)
- 2008. 급진적 타자성 (마르크 기욤과 함께) (''Radical Alterity'' with Marc Guillaume) (영어 초판)
- 2008. 카니발과 식인종, 혹은 세계적 적대의 유희 (''Carnaval et cannibale프랑스어'') (영어: ''Carnival and Cannibal, or the Play of Global Antagonisms'',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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